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비스 프레슬리 (문단 편집) == 여담 == * 자신을 구시대 가수로 만들어버린 1960~70년대 후배 세대의 [[록 음악]], 이른바 "요즘 것들"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신 음악은 일부러 멀리 했고, 자신이 예전부터 좋아하던 올드팝이나 [[가스펠]] 음악을 주로 들었다. * 1974년에 [[레드 제플린]]을 만났던 일화가 굉장히 유명하다. 레드 제플린 멤버들은 여타 60-70년대 밴드들처럼 엘비스의 굉장한 팬이었는데, 엘비스의 공연을 본 후 엘비스가 묵고 있던 호텔에 방문하였다. 엘비스는 레드 제플린이 인기 밴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음악을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고 상술한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잠깐만 시간을 내 주려고 하였으나, [[로버트 플랜트]]의 재치있는 입담에 푹 빠져서 2시간 동안이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계속했다고 한다. 이때 엘비스의 매니저는 그들이 있던 방 문을 두드렸으나 문을 잠그면서까지 대화를 계속했다고. 당시 엘비스는 레드 제플린을 따라다니던 [[그루피]]들에 대해 궁금해 했는데, 답변하기 곤란했던 로버트 플랜트는[* 당시 로버트 플랜트는 [[유부남]]이었다. 사실 당시 대다수의 록스타들은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그루피들과 바람피고 다녔다.] “그런 건 소문일 뿐이고 우리는 무척 가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린 호텔에 머물 때 딴 짓 안 하고, 오직 당신의 노래를 부르면서 휴식시간을 보내는게 유일한 낙입니다(일동 웃음).”라고 재치있게 답했다고. 또한 로버트 플랜트는 자신의 특기였던 엘비스 흉내 모창을 보여줬는데, 특히 엘비스가 ‘Love Me’를 부를 때의 목소리나 표정을 워낙 비슷하게 흉내내서 엘비스와 레드 제플린 멤버들을 포함한 모두가 폭소를 터트렸다고 한다. *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의 일화도 유명하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리처드 닉슨을 만난 자리에서 [[존 레논]]의 마약 상습 복용을 비난하는 일장 연설을 하고 자신을 마약 단속반장으로 임명하게 해달라고 해 백악관 직원들을 당황하게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닉슨은 그런 프레슬리를 아주 좋아해서 같이 박장대소를 했고 프레슬리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백악관 직원들에게 마약 단속반 배지를 만들어 선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는 "엘비스와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영화화되었다. * [[딘 마틴]]의 팬이라 I don't care if the sun don't shine을 락앤롤 스타일로 커버했다. * 슈퍼스타가 된 후에도 입맛이 변하지 않아서, 햄버거, 콜라, 감자칩 등, 서민적인 [[정크푸드]]를 좋아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구운 식빵에 [[땅콩버터]]와 [[버터]]를 듬뿍 바르고, 썬 [[바나나]], 튀긴 [[베이컨]]을 끼워 만든 샌드위치로 이는 일명 '엘비스 샌드위치'라고 불린다. 엘비스의 기일이 되면 그를 추억하며 직접 만들거나 카페에서 사서 먹는 사람들도 있다. [[파운드케이크]]도 무척 좋아해서 하루에 한 개 이상은 먹어치웠다. 때문에 '엘비스 파운드 케이크'라는 레시피도 존재한다. 죽기 전까지 매일같이 [[크리스피 크림 도넛]]의 글레이즈드 도넛 한 상자를 해치웠다는 일화도 유명하고, 일반 도넛 외에도 젤리 도넛을 상당히 좋아하기도 했다. 이런 고칼로리 음식들을 한 번에 4~5개 이상 먹는가 하면, 한 끼에 땅콩버터와 버터 한 통을 다 쓸 정도로 폭식을 했다. 때문에 불균형하고 [[대식가]]스러운 식습관이 요절의 원인이 된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 엘비스와 가수 활동을 함께 한 동료 스태프들을 엘비스의 고향 이름을 따서 '멤피스 마피아'(Memphis Mafia)라고 부른다. 여기에서의 마피아는 범죄집단이란 뜻이 아니다. 의미구성원 간의 관계가 매우 밀접한 집단도 중립적인 의미에서 마피아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 [[앤디 워홀]]이 가장 관심을 보인 두 명의 남자 스타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제임스 딘]]. 워홀이 엘비스를 주제로 한 작품을 처음 만든 건 1963년의 일로 <플레이밍 스타>(1960)의 홍보사진을 소재로 삼았는데, 워홀의 작품 전체를 통틀어 전신이 다 나오는 모델은 엘비스가 유일하다. 사실 워홀은 슈퍼스타들의 불행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그가 엘비스에게 집착하게 된 이유도 당시 신진 뮤지션들이 대두하면서 엘비스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https://www.moma.org/learn/moma_learning/andy-warhol-double-elvis-1963/|MoMA]]에서 소장 중인 이 (1963)는 원래 워홀이 [[밥 딜런]]에게 선물했던 것인데, '''잠재적 금전 가치를 짐작하지 못한 딜런은 이걸 다른 사람의 소파 하나와 맞바꿔버렸다'''. 딜런은 나중에 "매우 멍청한 짓이었다"며 후회했다. 의 프린팅 중 하나는 2023년 4월 현재 [[마릴린 먼로]], [[말런 브랜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다룬 작품들과 함께 역대 가장 비싸게 팔린 워홀 작품 10위권에 속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Warhol-Double-Elvis.jpg|width=100%]]}}} || * 공연이 끝났음을 지시하는 "Elvis has left the building(엘비스는 이미 건물 밖으로 떠났습니다)"란 관용어구가 있다. 1956년 12월 15일 [[루이지애나주]] 박람회의 일환이었던 합동 공연에서 프로모터 호레이스 로건(Horace Logan)이 최초로 쓴 말이다. 공연 중간 순서였던 엘비스가 슈리브포트(Shreveport)의 허쉬 기념 경기장(Hirsch Memorial Coliseum) 무대에서 퇴장하고 한참 뒤에도 관객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큰 소음을 내자 다음 공연 주자를 등장시키기 위해 말한 것인데, 이후 엘비스의 콘서트나 앨범 속에도 여러 번 이 말이 나왔다. 이 표현은 단지 공연 종료를 관객들에게 주지 시키는 데에만 국한돼 쓰이는 게 아니다. 토론 사회나 스포츠 중계 등에서 극적 퇴장이 이뤄진 경우에도 쓰며, 홈런공이 외야 펜스를 벗어났을 때도 써먹는 등 활용법이 다양하다. 심지어는 누군가가 사망했을 시에도 쓴다. [[프랭크 자파]]는 1988년 앨범 "Broadway the Hard Way"에 "Elvis Has Just Left the Building"이란 곡을 수록한 바 있다. [[GTA 2]]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앨비스 닮은 사람을 5초 안에 죽이는 데 성공하면 등장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 프로그래밍에 "엘비스 연산자(Elvis operator)"라는 게 있다. [[Kotlin|코틀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항 연산자의 축약형태로, 아래의 예시에서는 s가 null일 경우 빈 문자열을 value에 담는다.{{{#!syntax kotlin val value: String = s?:""}}} 고개를 왼쪽으로 90도 돌린 뒤 s와 ""사이의 '''?:'''를 쳐다보면 명칭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을 엘비스의 머리모양, :을 엘비스의 눈으로 간주하면 전체 모양이 엘비스의 얼굴과 얼추 비슷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lvis_operator.jpg|width=100%]]}}} || * '파사류(破邪流)'라는 [[태권도]] 계열의 특이한 무술을 배운 적이 있다. YMCA권법부 출신의 이강희[* Kang Rhee,1938 ~ 2019.] 사범이 창시한 무술이며, 단순히 명예단증을 받은 게 아니라 제법 오랫동안 진지하게 수련해 무려 7단까지 승단했다고 하며 특히 [[발붙여차기|발붙여]] [[옆차기]]를 잘했다고 한다. 90년대 초반 성우 이선영의 영화음악실에서 나오길, 이강희 사범에게 수고한다면서 비싼 고급차량을 새걸로 사줘 이사범이 나중에 회고하길,수련비보다 각종 선물로 후하게줬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lvis-and-karate-rare-image.jpg|width=100%]]}}} || * 엘비스의 군입대 소동에 영향을 받은 "바이 바이 버디"(Bye Bye Birdie)라는 뮤지컬이 있다. 1960년에 초연되었고, [[자넷 리]], [[딕 반 다이크]], [[앤 마그렛]] 주연의 영화판으로도 만들어졌다. * 2022년 6월 24일 전기 영화 <[[엘비스(영화)|엘비스]]>가 개봉했다. [[오스틴 버틀러]]가 엘비스 역으로 나오며 <[[포레스트 검프]]>에서 엘비스에게 영감을 줬던 포레스트 검프 역의 [[톰 행크스]]도 이 작품에서 다시 엘비스와 재회한다. 배우의 재연 뿐만 아니라 영화 중간중간 실제 엘비스의 영상도 나온다. 영화와 주연 배우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엘비스가 소유했던 검은색 [[페라리]] 디노 308 GT4가 [[핫휠]]에서 1:18 모형으로 발매되었다. * 한국의 가수 [[남진]]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반쯤 벤치마킹한 사실도 유명하다.[* 당시 경쟁자였던 [[나훈아]]는 [[톰 존스]]를 벤치마킹했으나, 한국인 기준으로 볼 때 외형이나 노래 면에서 엘비스만큼 특색 있는 가수가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젊은 시절 인기 절정의 순간에 군복무를 했던 생애도 엘비스와 매우 닮아있다.[* 엘비스는 서독에 주둔하였고 남진은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갔다는 점도 닮았다.] *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미국팀의 경기에서 미국인 관중들중 엘비스 분장을 한 관중이 생중계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당시 국내 해설진들도 이 관중을 언급하기도 했다. * 1998년 스웨덴에 사는 리사 요한센이 '나, 리사 마리 : 엘비스 프레슬리의 진짜 딸 이야기'라는 자서전을 발표했다. 자서전에는 엘비스의 외동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가 사실 가짜라는 주장이 담겨져 있었다. 자신은 1968년 2월 1일 엘비스 에런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앤 볼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멤피스에 위치한 엘비스의 저택인 그레이스랜드에서 보냈는데, 유산을 물려받을 성인이 될 때까지 피신해 있어야 한다는 엄마에 말에 이름을 세리 로젠퀴스트로 바꾸고 유럽에서 숨어 살았다는 것이다. 리사 마리 프레슬리는 자신의 대역에 불과하다는 요지였다. 이 주장은 워낙 전세계에서 화제가 됐던 일이라 2015년 9월 6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779135|다루었다.]] 2011년엔 엘비스 유족들을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인정하고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며 소송을 걸었는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401093|#]] 그 뒤로는 갱신된 소식이 없다. 이미 자서전 출판사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DNA 검사를 거부해 고소를 당한 적이 있듯이, 엘비스 유족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DNA 검사를 거부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말론 브란도]]와 서로의 성적 취향을 이야기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https://www.express.co.uk/entertainment/music/1649855/elvis-presley-gay-sexuality-marlon-brando-letters-carmen-montez|#]] * [[브루노 마스]]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엄청난 광팬인 걸로 유명하다. 어릴 때 엘비스 프레슬리 모창 가수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엘비스 프레슬리 모창가수로 활동했으며, 허니문 인 베가스라는 영화에 리틀 엘비스라는 역할로 출연까지 할 정도로 [[브루노 마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이었으며 [[브루노 마스]]가 음악을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시그니처 헤어스타일도 2014년에 따라한 적 있다. [[파일:bruno elvis.jpg|width=400]] * 「また逢う日まで(またあうひまで)」라는 노래를 히트시키며 1971년 일본 레코드 대상을 받은 오자키 키요히코(尾崎紀世彦, 1943~ )의 외모는 --좋게 말해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판박이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